2010년 마무리를 산에서 하고 싶어 그동안 미뤄 왔던 겨울 설악산을 보러 12월27일 오전 7시 동서울 터미널에 나가 속초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날씨가 연일 영하 10도 이상 급강하, 오리털 침낭이며 겨울 등산 옷, 삼 일간 산에서 먹을 것(특히 산장에서 만찬을 즐길 소주 1.8L 와 소 갈비살) 등 만반의 준비를 하느라 배낭 무게도 만만치 않아 솔직히 체력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버스를 타고 출발하니 조금 걱정이 누그러지는 기분이 든다. 요즘은 서울 양양 고속도로가 개통이 되어 백담사 입구인 용대리까지 두시간정도 걸려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보니 역시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백담사를 지나 수렴동대피소까지의 구간은 걷기에 편한 코스다. 점심을 수렴동 대피소에서 간단히 라면을 끓여 먹고, 구곡담계곡 쪽으로 코스를 돌렸다. 가야동계곡이나 구곡담계곡 쪽이나 두껍게 얼어 있어 여름철 시원스런 계곡의 물소리는 들을 수 없다. 왼쪽으로는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용아장성의 옥녀봉이 보이고 설악의 암봉들이 하나씩 들어나기 시작했다. 용아폭, 용손폭, 드디어 쌍룡폭포다. 재작년 서북주능선을 타고 여름 폭우 속에 하산하다 본 엄청난 수량의 폭포수가 모두 얼어있다. 구곡담 끝에서 봉정암으로 오르는 구간은 짧지만 배낭무게에 경사도가 급해 몇 걸음 걷다 쉬고 하며 오르다 보니 신라의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사리탑이 있고, 지리산의 법계사 다음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절인 봉정암이다. 어느덧 겨울산은 5시 넘어가니 캄캄해지기 시작하고 소청산장으로 오르는 구간은 눈이 덮여있어 걷기가 조심스럽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라는 양사언의 시조도 있듯이 숨을 헐떡이며 오르다 보니 희미하게 소청산장의 불빛이 보인다. 배낭무게에 눌려 어깨가 장난이 아니게 쑤시지만 오늘은 여기가 끝이라는 안도감에 아픔은 덜해진다. 설악의 추위는 산장의 식수를 다 얼려 놓아 비싼 물(한 병에 3,000원)을 사서 밥을 하고, 갈비살을 구워 한잔의 소주를 마시니 하루의 피로가 다 가시는 것 같다. 사실 이 맛에 그 무거운 것을 지고 생고생을 했는데……. 대병 소주를 일행 한사람과 마시려니 부담이 되어 대학 졸업반 남학생 둘이 준비 없이 올라와 햇반에 라면만 끓여 먹기에 불러 같이 먹었는데, 산에 올라와 소 갈비살 먹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감격해했다. 대피소의 소등은 빠르다. 온통 적막하고 캄캄한 밤 세수나 양치는 생각도 못하고 침낭을 깔고 누웠다. 집에서는 보통12시 넘어 자는데, 9시에 자려니 고역이다. 사방에서 코고는 소리가 진동을 해 자는 둥 마는 둥 선잠을 자다 시계를 보니 새벽4시, 주변이 시끄럽다. 사람들이 대청 일출 본다고 서두르는 모양이다. 눈이 와 일출은커녕 어둠에 산 오르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냥 뒹굴다 8시쯤 일어나 화장실 갈 겸 밖으로 나오니 사방이 하얗다. 눈이 그치고 산장 아래로 내설악이 얼굴을 내민다. 온통 새 하얀 용아장성, 공룡능선, 멀리 울산바위까지 눈에 들어온다. 아! 저걸 보려고 왔는데, 난 산복이 있나 보다. 그 보기 어렵다는 백두산 천지도 한 번에 보았듯이 말이다. 아침을 먹고, 눈길에 추위를 견디기 위해 얼굴 마스크에, 스패츠에 아이젠까지 완전 무장을 하고 소청봉으로 올랐다. 배낭을 산 한쪽에 벗어 놓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중청으로 향했다. 눈꽃에 사방이 장관이다. 중청대피소를 지나 드디어 대청봉(1,708m) 정상이다. 열 번 이상 대청을 올라왔지만 겨울의 대청봉은 매섭기만 하다. 바람에 추위까지 더해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키면 배터리가 얼어서인지 작동이 안 돼 겨우 한 컷 찍었다. 하산은 천불동계곡 쪽으로 정했다. 소청에서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오는 구간은 험한데, 눈길에 배낭 무게까지 더해지니 신경이 곤두서 하산이 쉽지 않다. 기다시피 내려와 희운각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천화대를 거쳐 무너미고개를 지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지리산 칠선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더불어 빼어난 경치를 지닌 천불동계곡 역시 온통 얼어있다. 천당폭포, 양폭, 오련 폭포를 지나 양폭산장에서 간단히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귀면암 쪽으로 내려오는데, 이젠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무릎 관절통에 근육통까지 거기에 아이젠을 차고 돌길을 하루 온종일 걸어 발바닥은 완전히 마비 상태, 귀면암을 지나니 비선대 1.5km 라는 반가운 안내 팻말이 보인다. 어둑해진 비선대를 지나 설악동까지의 길은 차가 다닐 정도로 길이 부드럽지만 소공원 매표소까지는 3km로 짧은 거리는 아니다. 추위에 날이 저물어 소공원에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제는 민박집에라도 정해 빨리 씻고 대포항에 가서 싱싱한 회에 한잔 해야겠다.
사진 순서는 ♥백담사 ♥새로 단장된 수렴동대피소 ♥구곡담계곡에서 올려다 본 용아릉 ♥용손폭포 ♥얼어버린 쌍폭 ♥눈 덮힌 용아장성릉 ♥소청산장 ♥소청 설화 ♥중청에서 내려다 본 소청봉 ♥대청봉 ♥소청봉에서 ♥범봉 ♥겨울의 공룡능선 ♥천화대 ♥무너미고개에서 내려다 본 천불동계곡 ♥양폭산장에서 본 음폭골(죽음의계곡) ♥비선대
백담사
수렴동 대피소
쌍룡폭포
중청 대피소에서 본 대청봉
소청에서
공룡능선
천화대
음폭골
비선대에서 본 장군봉
중청 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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